2022년 11월 23일 아프리카 대사단 초청 만찬 / 대통령실 홈페이지 제공

정부가 8월 29일 확정한 2024년 예산안에 의하면 내년도 ODA 총액은 6조 5,312억으로 올해에 비해 무려 44%나 증액되었다. 이는 우리 정부가 작년에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에 따라 ODA 규모를 2030년까지 세계 10위권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제시한 목표를 크게 앞당긴 것이다. 내년도에는 한국에서 한-아프리카 특별정상회의가 개최될 예정인데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ODA 지원 금액도 약 29퍼센트 증액된 3,073억 원이 책정되었다. 이는 한국이 명실상부하게 OECD DAC(개발협력위원회) 회원국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대외 신인도를 높이는 데 분명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의 세계적 위상은 2022년 GDP 10위, 국가브랜드가치 10위, 소프트파워(Monocle’ Soft Power Survey) 4위, 국가권력(유에스앤드월드리포트) 6위를 기록하였다. 한국 경제 규모가 10위권에 도달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국가 브랜드 등 소프트파워를 포함한 종합적인 국력에서 이처럼 상위권에 오른 것은 처음 있는 일로서, 이에 대한 함의와 과제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소프트파워는 군사력, GDP, 인구, 부존자원, 영토 등 물리적 요소가 아닌 제도, 가치, 문화, 정책 등을 그 원천하고 삼고 있고, 상대방이 이런 것들에 ‘매력’을 느끼고 호응해 올 때 발생한다. 한 기업의 성패가 자사의 상품 브랜드에 대한 시장 평가에 좌우되듯이, 국가 차원에서도 국가의 이미지, 신뢰성이 국제사회에서 한 나라의 경쟁력과 영향력을 결정한다. 우리나라로서는 부존자원이 빈약하고 수출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태에서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라는 국운이 걸린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는 국제적 경쟁력에 대해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오늘날 지식정보사회에서 국가 이미지와 같은 상징적 요인이 보다 중요해진 사실을 감안한다면 더욱더 그렇다.

그런데 소프트파워는 인지적인 요인에 근거하므로 하드파워에 비해 유동적이다. 따라서 높은 국제적 위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국가들은 그에 상응한 국가 이미지 ‘관리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ODA 비용이다. 그리고 국제적인 평판이나 기대 수준에 못 미치게 행동하는 경우 오히려 국제적 위신이 크게 손상될 수 있다. 따라서 재원 부담뿐만 아니라 실제 역할, 행동에 있어서도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면 국가 신뢰성이 타격받게 되는 것이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좋은 사례다.

이러한 점들은 우리의 대아프리카 개발협력에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발협력위원회는 올해 2월 ‘아프리카 개발협력전략’을 채택하였는데 이것은 역대 정부에서 검토 또는 채택된 대아프리카 정책 문서 중 가장 체계적이고 진전된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의 낮은 대아프리카 경제협력 규모를 감안, 단기적 경협성과 보다는 아프리카의 2030 지속가능개발목표 달성 지원과 중장기 협력 기틀 마련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지원전략으로 미래를 향한 도약 (Future Africa), 당면 위기 극복 (Safe Africa), 성장동력 확충(Rising Africa)을 제시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 이와 같은 정책적 청사진 마련과 함께 전략적인 견지에서 요망되는 것은 개발 관련 한국의 ‘비교우위’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저발전의 근원 및 이에 따른 개발 수요 (needs) 등을 면밀히 감안한 한국의 대아프리카 개발협력 ‘브랜드’ 정립이다. 우리의 대아프리카 개발 협력 ‘브랜드’ 정립이 시급한 이유는 서방 선진국, 중국, 일본 외에도 신흥 공여국들(중동 산유국, 튀르키예, 인도, 브라질 등)과 차별화하면서 주어진 ODA 재원을 보다 효과적이고 성과 있게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방 선진국들은 기본 인간수요 및 인도적 지원, 민주주의·제도 발전 지원, 분쟁 예방·대처를 위한 지원 등에 주력한다. 반면 중국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인프라 시설 건설, 에너지 자원 개발을 위한 지원에 특화하면서 최근에는 지원 분야를 보다 확대하고 있다. 노르웨이,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최고 수준의 GNI 대비 ODA 비율을 자랑하며 평화구축, 학술 기관 등 민간단체 활동을 위한 지원에 적극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은 단연 세계 최대 ODA 공여국으로서 아프리카에 대한 지원도 절대적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외형상 여타 주요국들에 비해 미국의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낮은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미국의 아프리카에의 영향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은 2021년에 아프리카에 142억 불의 ODA를 제공한 반면 아시아에게는 43억 불을 지원했다.

유럽 국가들은 아프리카와의 역사적, 지리적 ‘특수관계’를 누리고 있다. 강대국인 영국, 프랑스의 경우 각각 영연방정상회의, 프랑스어권국가 정상회담이라는 대규모의 정례적인 정상회의를 통해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전통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 일본, 중국, 인도 등 주요 아시아 국가들도 아프리카 국가들과 정례적인 정상회의를 개최해 오고 있다. 일본은 동경아프리카개발국제회의(TICAD)를 1993년부터 개최해 오고 있으며 중국은 2000년 이래 중국-아프리카협력포럼(FOCAC)을, 인도는 2008년부터 인도-아프리카 포럼 정상회의(IAFS)를 개최하고 있다. 러시아도 지난 7월에 제2차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개최하였으며, 심지어 튀르키예도 2021년 제3차 터어키-아프리카 파트너십 정상회의를 가진 바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아프리카와의 협력 관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와 지리적, 역사적 또는 종교적 특수관계(이슬람 국가인 중동 산유국, 튀르키예 등은 이슬람 국가이거나 이슬람교도들이 많은 북아프리카, 서부 아프리카, 동부아프리카 등지에 특히 활발히 진출)를 가진 나라들은 이것을 레버리지로 삼아 아프리카에 개입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대아프리카 협력 전략에 대해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미국과 동북아 주변 주요 국가들과의 관계에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해 왔으며 최근에는 베트남을 위시한 동남아 각국과의 관계 증진에 보다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유럽은 가장 선진국들이 많은 지역이고, 중동은 전통적으로 우리의 주요 건설 시장, 원유 공급원이었다. 이에 비해 한-아프리카 관계는 상대적으로 소원했던 것이고, 이는 교역 규모 등 각종 통계에서 잘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 사례들을 벤치마킹하거나 기존의 국제적 제도나 아젠다를 그대로 따르기만 해도 되는 단계를 벗어난 지 오래다. OECD DAC 회원국으로서 물론 OECD 지침이나 권고사항들을 충실히 따라야 하겠지만 OECD가 각국의 모범 사례들(best practices)을 중시하고 회원국들의 창의적인 정책적 아이디어나 제안들을 환영한다는 사실을 감안, 지금은 우리가 적극적인 아젠다 설정 등 주도적 노력을 통해 OECD와 국제사회에 보다 많은 기여를 할 때라고 본다.

국제사회는 1차 개발연대 기간에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발전과 산업화를 위한 지원에 주력했지만 이것이 실패로 돌아갔고, 2차 개발연대 기간에는 접근 방식을 바꾸어 기본 인간수요에 대한 지원에 초점을 맞추며 민주주의 및 인권, 거버넌스, 책임성, 시장주의 강화를 도모하였다. 80년대와 90년대에 시행된 구조조정정책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재정 건전화에는 어느 정도 기여를 했지만 경제 저성장과 빈곤 심화를 야기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15년 단위의 유엔 중심의 다자적 개발목표, 즉, 밀레니엄개발목표(MDGs)와 지속가능개발목표(SDGs)가 차례로 추진되었고 지속가능개발목표 달성 시한(2030)은 이제 불과 7년밖에 남지 않은 상태다.

이처럼 국제개발커뮤니티의 정책적 콘텐츠가 자주 바뀌면서 정교화, 복잡화되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고 아프리카 개발에 진전이 없거나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었다는 것을 반영한다. 아프리카의 장기적 개발 추세를 분석하는 남아공 소재 안보문제연구소(ISS) 프로젝트(’미래 아프리카’)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아프리카와 여타 세계 간 실질 GDP 격차는 1960년 이래 지금까지 계속 확대되어왔으며, 이러한 추세는 아프리카의 제반 상황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2040년대에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저개발 국가들은 특히나 최소한의 국가적 역량 없이는 순전히 민간분야의 힘만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 그만큼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데 주류 경제이론과 국제개발체제는 ‘시장 대 정부’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함몰되어 이런 것들이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악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1996년 아프리카 국가들의 역량을 평가한 세계은행은 거의 모든 아프리카 국가들의 역량은 지난 30여 년 동안 퇴보했다고 지적하였다. 즉, 아프리카 국가들은 지금보다 독립 당시 더 나은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OECD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달성을 위해서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최소 연평균 6%의 경제성장을 이룩해야 한다는 보고서도 내놓은 바 있다. 동 보고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전에 나온 만큼 더욱이 현실적으로 동 목표 달성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무엇보다, 각국은 복잡한 17개 SDG 목표와 169개 세부 목표 이행 상황을 점검할 수 있는 테이터가 태부족이어서 기술적으로도 SDGs 업무 수행에 많은 애로가 있다.

아프리카 저개발의 근본 원인은 자원이나 재원의 결여 또는 수단의 결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리’와 ‘실행’의 문제에 있다. 그래서 아무리 국제사회가 아프리카에 대해 지원을 해도, 아무리 좋은 제도, 정책들을 도입해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 중심의 주류 국제개발체제의 맹점은 지나치게 제도와 정책을 강조하고 마치 올바른 제도와 정책을 아프리카 국가들이 수용하기만 하면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보는 안일함에 있다. 그러나 제도나 정책은 스스로 작동하지 않고 사람의 행위에 의해 실행되는 것이다.

주류 국제사회의 접근과 아프리카의 저조한 실적 간 간극이 좁혀지지 않고 평행선을 이루고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의 역량과 태도라는 개발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인적자본의 중요성과 역할을 간과하고 이것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경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적자본에 대한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인적자본을 주로 학교 교육이나 공식 교육으로 간주하는데 지식 축적을 위한 교육이 필수적이지만 이것만으로 국가발전이 실현될 수 없다.

사실 아프리카 국가들의 엘리트층과 중산층 중에 서방 선진국의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들이 많고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이다. 영어, 불어 등 국제 언어에 능통하고 서구적, 국제적인 방식과 관행을 체득, 내면화하여 자국에서뿐만 아니라 주요 국제기구 등에서 고위직으로 활동하는 인사들이 다수이다. 이렇게 국가의 지도층, 영향력 있는 지위에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 왜 아프리카에 필요한 변화가 일지 않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나아가, 매년 수많은 대학 졸업자들이 배출되지만 전공 분야와 일자리 간의 불일치 문제가 심화되고 있으며, 국내외에서 교육받은 고급인력의 해외로의 두뇌 유출 현상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는 실태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이러한 문제점들과 기존 교육 방식의 한계를 타개하기 위해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전인적 인간개발(holistic human development)이라고 본다. 전인적 인간개발은 학교교육·전문교육뿐만 아니라 인성·근로 윤리 교육, 사회 공동체·시민 교육, 조직관리·리더십 교육 등 4개 주요 영역을 망라하는 것으로, 학술적, 이론적인 교육 보다는 실무적, 실천적인 교육과 훈련에 무게를 둔다. 우리나라는 인간 자본과 사회적 자본이 결합된 전인적 인간개발을 통한 경제발전, 사회·정치발전을 압축적으로 이룩한 세계에서 보기 드문 사례로서 이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십분 활용하면서 대아프리카 개발협력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전인적 인간개발’을 우리의 대아프리카 개발협력 브랜드로 정립하고 이것을 효과적으로 실행해 나갈 때 대아프리카 개발협력 파트너로서 우리가 보다 선명한 차별성과 경쟁력, 그리고 신뢰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주도하는 전인적 인간개발 접근은 우리에게는 큰 숙제를 주는 것이 맞지만 개발 접근 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이 절실한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아주 의미 있고 중요한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추진된다면 한국과 아프리카에게 윈윈(win-win)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박종대 前 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現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아시아-아프리카 센터 자문위원

1991년 외무부에 입부하여, 주미 대사관, 주 코트디브와르 대사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및 대통령 비서실에서 근무하였으며, 주 우간다 대사와 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2018-2020) 등을 역임했다. 퇴임 후에는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객원 교수,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 교수, 요하네스버그 대학 고등연구소 (JIAS) 자문위원, 한-아프리카재단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주요 저술로는 “아프리카 개발을 위한 새로운 구상: 한국 개발모델에서 그 해답을 찾아라(2021, 한국제도경제학회)”, “The Significance of Korea’s Saemaul Undong (New Village Movement) for Africa’s Development(2022, Korea Institution and Economics Association)”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