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방문학자] 급격한 ‘민통선 축소’의 3대 위험성[포럼]2026-09-10 15:43
작성자 Level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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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예비역 육군대령

국방부는 17일 군사시설 규제개선 대책을 발표하면서 ‘국민의 편익 증진과 안보 환경 변화에 대한 능동적 대응’ 등의 명분을 내세웠다. 군사분계선(MDL) 이남 평균 8㎞에 설정된 민간인통제선을 2㎞ 정도 북상시킴으로써 여의도 면적의 90배에 이르는 지역을 통제보호구역(민통선 안쪽)에서 제한보호구역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통선 남쪽 제한보호구역(MDL 이남 25㎞ 이내) 기준 재설정을 통해 여의도 면적의 150배 규모를 보호구역에서 해제하겠다고 한다. 주민들의 개발 및 재산권 행사 등이 묶여 있는 만큼, 완화·해제 요구가 이어졌고, 소련 붕괴와 2000년 접경지역 지원특별법 제정 이후엔 역대 정권이 단계적으로 조정해 왔다.

그러나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공식화했고, 핵 위협은 물론 러시아 파병으로 비(非)핵무기도 강화한다는 점에서 더 신중해야 한다. 한 번 완화하면 되돌리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규제 완화와 정치 논리가 아니라 안보 관점에서 결정해야 하는 이유다.

첫째, 현대전에서 완충지대의 부재가 어떠한 참극을 불러오는지는 2023년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사례가 극명하게 보여준다. 당시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사이에는 국경선 구실을 하는 철책만 있을 뿐, 물리적 공간 확보를 위한 실질적인 비무장지대(DMZ)나 완충 구역이 전혀 없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화 경계 시스템인 ‘스마트 펜스’는 하마스의 동시다발적 기습 타격에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무력하게 뚫렸으며, 민간인 구역이 적의 화력과 병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끔찍한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작전 종심(縱深)이 극도로 짧은 한반도 전장 환경에서 전술적 공간의 축소는 곧 유사시 군의 현장 대응 시간을 강제로 박탈당함을 의미한다. 국방부는 과학화 경계 시스템으로 공백을 메우겠다고 장담하지만, 이스라엘의 패착에서 보듯 기계적 장비는 적의 물리적 교란과 기습에 치명적인 취약성을 드러낼 뿐이다. 완충 구역을 스스로 거세해 종심을 줄이는 발상은 전방 부대와 후방 민간인의 생존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둘째, ‘행정 절차 완료 후 공개’라는 방침은 밀실·독점 행정의 전형이다. 해제 지역과 세부 정보를 은폐하는 행위는 투기를 막기는커녕, 오히려 정보의 비대칭성을 악용하는 내부 거래나 기획부동산의 암약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을 뿐이다. 안보 지형과 접경지역 주민의 삶을 바꾸는 중차대한 정책임에도 투명한 공론화 과정과 민주적 검증을 생략한 채 군사작전 하듯 밀어붙이는 행태는 행정 편의주의의 극치이다.

셋째, 군사시설 보호구역은 국가 비상사태 시 국민의 생명을 지킬 최후의 보루로 기능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조치의 기저에는 표(票)를 의식한 정치권의 압박과 자본의 논리가 강하게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안보라는 절대적 가치를 경제적 이해관계와 맞바꾼 이번 선례는 향후 군사적 필요성에 따른 정당한 규제마저 지역 민원에 밀려 표류하게 하는 최악의 걸림돌이 될 것이 자명하다.

국방부는 수사(修辭)에 숨지 말고 하마스 사태가 남긴 경고를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 완충지대를 쉽게 허문 대가는 결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청구서로 돌아올 것임을 엄중히 지적해 둔다.

박기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예비역 육군대령박기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예비역 육군대령